다카이치 사나에, 역대급 총선 압승의 전말
2026년 2월 8일, 일본 정치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습니다. 제51회 중의원 총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전체 465석 가운데 316석을 단독으로 확보하며, 전후(戰後) 일본 역사상 단일 정당 최다 의석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헌법 개정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310석)를 단독으로 상회하는 수치로, 연립 파트너인 일본유신회(36석)까지 합산하면 무려 352석에 달하는 '매머드급 여당'이 탄생한 셈입니다.

반면 야당 진영은 처참한 패배를 맛보았습니다.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이 선거 직전 통합하여 창당한 '중도개혁연합'은 선거 전 172석에서 49석으로 급감하며 사실상 궤멸 수준의 참패를 당했습니다. 대표가 사임을 시사할 정도로 존속 위기에 내몰렸으며, 이번 선거 결과는 명실상부한 '다카이치 1강' 체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조기 총선의 배경: 중국 희토류 수출 규제와 승부수
다카이치 총리가 높은 내각 지지율(약 70%)을 믿고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중일(中日) 갈등의 격화였습니다. 2025년 11월 다카이치 총리가 '대만 유사시 일본의 개입'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이후 중일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었고, 2026년 1월 6일 중국이 일본을 겨냥해 희토류 등 이중용도 물자의 수출 규제를 전격 발표하면서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일본 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는 중국의 경제 보복 조치로 인해 정기국회에서 야당의 거센 공세가 예상되었습니다. 아사히신문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로) 총리 관저 내 위기감이 커졌고, 불상사가 드러나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이 조기 해산론을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즉, 지지율이 높은 시점에서 선거를 치르는 편이 의석수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한 것입니다.
핵심 선거 공약: 의원 삭감과 식품 소비세 제로
다카이치 총리가 내건 선거 공약은 실생활과 밀접한 경제 정책이 핵심이었습니다. 주요 공약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공약 항목 | 주요 내용 |
| 중의원 정수 10% 삭감 | 현행 465석에서 약 45석 감축. 합의 불발 시 소선거구 25석, 비례 20석 자동 삭감 |
| 식료품 소비세 제로 | 식료품 소비세율을 2년간 한시적으로 0%로 인하. 고물가 부담 경감 목적 |
| 경기부양책 | 21조 엔(약 200조 원) 규모의 대규모 경기부양책 추진 |
| 헌법 개정 | 자위대 헌법 명기를 골자로 한 헌법 9조 개정 추진 |
특히 식료품 소비세 제로 공약은 장기화된 고물가 속에서 생활 안정을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이라는 구호 아래 추진되는 이 정책은 아베노믹스를 계승·확장한 이른바 '사나에노믹스'의 핵심 기조로, 금융 완화와 적극적 재정 출동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나마니아'와 '사나카츠' 열풍: 젊은층이 빠진 다카이치
이번 총선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 중 하나는 '사나마니아(サナマニア)' 열풍입니다. 다카이치 총리의 이름 '사나에'에서 파생된 이 용어는 그의 열렬한 지지자들을 일컫는 말로, 전통적인 보수층을 넘어 젊은 세대와 무당파층까지 확산된 것이 특징입니다.

산케이신문 조사에 따르면 18~29세 연령대에서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무려 92.4%에 달했습니다. 일본 SNS에서는 20~30대를 중심으로 다카이치 총리의 패션과 생활 방식을 따라 하는 '사나카츠(サナ活)'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사나카츠'는 다카이치 총리의 애칭 '사나'와 활동을 뜻하는 '카츠(活)'가 합쳐진 신조어입니다.
강한 메시지와 직설적인 화법, 그리고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상징성이 젊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경제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강한 일본'이라는 보수적 가치관을 명확히 제시하는 정치 스타일이 기존 정치에 회의적이던 무당파층까지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개헌 발의선 3분의 2 초과: 헌법 개정의 문이 열리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단연 개헌 발의선의 돌파입니다. 일본 헌법 개정은 중의원·참의원 각각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발의한 뒤, 국민투표에서 과반의 찬성을 얻어야 가능합니다. 자민당이 중의원에서 단독 316석으로 3분의 2(310석)를 넘어선 것은 전후 일본 헌정사상 최초의 일로, 개헌 추진의 최대 장벽이 사실상 제거된 셈입니다.
참의원에서도 자민당과 유신회를 합산하면 개헌 발의에 필요한 의석을 확보하고 있어, 양원 모두에서 개헌 발의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이는 1947년 일본국 헌법이 시행된 이래 약 79년 만에 헌법 개정이 현실화될 수 있는 역사적 국면이 도래했음을 의미합니다.
헌법 9조 자위대 명기 개정안: 핵심 내용과 쟁점
다카이치 총리가 추진하는 개헌의 핵심은 이른바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헌법 9조의 개정입니다. 현행 헌법 9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 조항 | 현행 헌법 9조 내용 |
| 제1항 | 국제 분쟁 해결 수단으로서의 전쟁과 무력 위협·행사의 영구 포기 |
| 제2항 | 육해공군 및 기타 전력의 보유 금지, 국가 교전권 부인 |
자민당의 개정안은 이 9조의 기본 틀인 '전쟁 포기'는 유지하되,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명문화하여 법적 정당성을 부여하겠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현재 자위대는 사실상 군사 조직이면서도 헌법상 근거가 없어 '위헌적 존재'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를 헌법에 명기함으로써 법적 모호성을 해소하겠다는 것이 자민당 측 논리입니다.

그러나 반대 진영에서는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는 순간, 9조 2항의 '전력 불보유' 원칙이 사문화되어 일본이 사실상 '전쟁 가능 국가'로 전환되는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자위대가 헌법적 정당성을 획득하면 해외 파병,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의 범위가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핵심입니다.
다카이치 총리의 개헌 속도전 의지: 2월 9일 기자회견
다카이치 총리는 선거 승리 이튿날인 2월 9일 기자회견에서 개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그는 "나라의 이상적인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 헌법인데, 이 나라의 미래를 확실히 내다보면서 헌법 개정을 향한 도전을 해나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특히 "지금까지의 논의를 토대로 각 회파(정당)의 동의를 얻어 개정안을 발의하고, 가능한 한 조속히 개헌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끈질기게 노력하겠다"고 구체적인 로드맵까지 제시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됩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동맹국과 주변국의 이해를 구하겠다"고 밝혀 보수 색채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발언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노선을 계승하면서도 더욱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아베 신조를 넘어서다: 보수 우경화 흐름의 새로운 국면
다카이치 사나에와 아베 신조의 관계를 이해하지 않고는 현재 일본 정치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아베 전 총리는 다카이치의 정치적 스승이자 멘토로, 자신과 이념을 공유하는 그를 일찌감치 차기 주자로 낙점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여자 아베'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는 다카이치가 아베를 넘어섰음을 보여줍니다. 아베 전 총리 시절에도 개헌은 숙원 과제였으나, 단독으로 3분의 2를 확보한 적은 없었습니다. 2012년 자민당 대승 당시에도 294석에 그쳤고, 연립 파트너인 공명당의 협력 없이는 개헌 발의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반면 다카이치 총리는 단독 316석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공명당이나 다른 정당의 협력 없이도 헌법 개정 발의가 가능한 초유의 상황을 만들어 냈습니다.
정책 노선 면에서도 다카이치는 아베보다 더 강경한 색채를 보입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총리 취임 후에도 공공연히 공언하고, 위안부 강제 동원 등 전쟁 범죄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숨기지 않으며, 대만 문제에서의 적극적 개입 의사를 드러내는 등 아베 시절보다 한층 노골적인 보수 우경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쟁 가능 국가' 논란의 본질
'전쟁 가능 국가'라는 표현은 일본의 개헌 논의에서 반대 진영이 사용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현행 헌법 9조는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일본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군사력 보유와 교전권을 원천적으로 금지한 조항입니다.
자민당 측은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는 것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 뿐, 전쟁 포기의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반박하고 있습니다. 첫째, 자위대의 헌법 명기는 9조 2항의 '전력 불보유' 조항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점입니다. 둘째, 헌법적 정당성을 갖춘 군사 조직은 해외 파병과 무력 행사의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셋째, 한번 개헌이 이루어지면 향후 추가적인 군사 관련 조항 개정의 문이 열린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일본은 이미 2015년 아베 정권 당시 안보법제 개정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제한적으로 용인한 바 있으며, 방위비를 GDP 대비 2%로 증액하는 등 사실상의 군사 대국화를 진행해 왔습니다. 헌법 개정은 이러한 기정사실화된 군사력 확대에 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마지막 퍼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우려의 핵심입니다.
사나에노믹스: 경제 정책의 향방
총선 압승으로 다카이치 총리의 경제 정책인 '사나에노믹스'도 본격적인 추진 동력을 확보했습니다. 아베노믹스를 계승·확장한 사나에노믹스의 핵심은 금융 완화 기조 유지, 21조 엔 규모의 대규모 경기부양책 투입, 그리고 식료품 소비세 한시 면제 등 공격적 감세입니다.
시장에서는 사나에노믹스가 본격화될 경우 엔화 약세(엔저)와 금리 상승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으로, 원엔 환율 변동에 따른 수출 경쟁력 변화와 일본발 금리 상승 압력 등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한일 관계에 미치는 영향과 전망
이번 자민당의 압승이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2월 9일 다카이치 총리의 총선 압승에 축하의 뜻을 전하며, "지난 1월 일본 나라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은 새로운 60년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함께 내디뎠다"고 밝혔습니다. 외교부도 "정국 변동과 무관하게 한일 관계 발전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언해 온 인물이며,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도 영유권, 야스쿠니 참배, 역사 교과서 등 한일 간 민감한 현안들은 언제든 양국 관계를 뒤흔들 수 있는 뇌관으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다카이치 총리의 지지율이 하락할 경우, 민족주의 카드가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일본 보수 정권은 국내 정치적 위기 시 역사·영토 문제를 부각시켜 지지층을 결집하는 패턴을 보여 왔기 때문입니다.
동북아 안보 질서의 변화 전망
다카이치 총리의 압승과 개헌 추진은 동북아 안보 질서에도 중대한 변수를 제공합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다카이치 총리에게 이례적인 공개 지지를 표명한 것은 미일 동맹 강화를 통한 대중국 견제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됩니다.
일본의 헌법 개정이 현실화될 경우, 동북아 안보 환경은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의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는 역내 군비 경쟁을 촉발할 수 있으며, 한반도 안보 환경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으로서는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와 독자적 외교 공간 확보 사이에서 섬세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향후 관건은 다카이치 총리가 개헌 국민투표를 언제, 어떤 형태로 추진할 것인지입니다.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에서 발의 요건을 갖춘 만큼 국민투표 실시 자체는 시간문제로 보이며, 현재의 높은 지지율이 유지되는 한 국민투표에서의 과반 확보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후 79년간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던 일본 헌법이 변화의 기로에 서 있으며, 이에 따른 동북아 정세의 재편은 2026년 이후 국제 질서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