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전 국무총리,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징역 23년 선고
2026년 1월 21일, 대한민국 헌정사에 깊이 기록될 역사적인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진관)는 내란 중요임무종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을 명령하였습니다. 이번 판결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415일 만에 나온 법원의 첫 '내란죄' 판단으로서, 향후 진행될 내란 관련 재판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이번 선고에서 주목할 점은 내란특검팀이 구형한 징역 15년보다 무려 8년이 더 추가된 중형이 선고되었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 선포 및 포고령 발령은 형법 87조에서 규정하는 내란 행위에 해당한다"고 명확히 판시하였으며, 이를 '12·3 내란'이라고 공식적으로 명명하였습니다.
재판부의 핵심 판단: "위로부터의 내란, 친위 쿠데타"
이진관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12·3 내란은 윤석열과 그 추종세력에 의한 것으로,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에 의해 위로부터 기획된 '친위 쿠데타' 성격의 내란"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재판부는 이러한 '위로부터의 내란'이 '아래로부터의 내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위헌·위법한 포고령을 발령하고 군 병력 및 경찰 공무원을 동원하여 국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을 점거·출입 통제하는 등의 행위는 형법상 내란에 해당합니다." 이는 형법상 내란죄를 성립시키는 핵심 요소인 '국헌문란의 목적'과 '폭동 행위'가 모두 존재하였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또한 재판부는 "이런 행위로 대한민국은 자칫하면 국민 기본권과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가 유린당한 어두운 과거로 회귀해 독재 정치라는 수렁에서 장기간 헤매 나오지 못하게 될 수 있었다"고 질타하면서, 12·3 내란 사건의 심각성과 위험성을 강조하였습니다.
한덕수 전 총리에게 인정된 혐의 상세 분석
재판부는 한덕수 전 총리에게 여러 가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였습니다. 먼저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와 관련하여,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국무회의 심의라는 비상계엄 선포의 절차적 외관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였고, 계엄 선포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은 부작위가 인정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간접적으로나마 민주적 정당성과 그에 대한 책임을 부여받은 국무총리로서,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헌법을 수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3 내란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런 의무와 책임을 끝내 외면하고, 그 일원으로서 가담하기로 선택했다"고 질책하였습니다.
특히 한 전 총리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만류하기 위해 국무회의를 소집하였다는 주장에 대해서, 재판부는 "대통령실 내 국무회의는 원격회의로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는 상황에서 만류의 의도가 있었다면 세종시 국무위원들도 참석하게 했어야 했다"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 혐의 | 재판부 판단 |
| 내란 중요임무종사 | 유죄 - 국무회의 심의로 절차적 외관 형성에 기여 |
|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 유죄 - 사후 계엄 선포문 작성 및 폐기 |
|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 유죄 |
| 공용서류 은닉·손상 | 유죄 |
| 헌법재판소 위증 | 유죄 - 탄핵심판에서 허위 증언 |
| 내란 방조 | 불인정 - 필요적 공범으로 방조 성립 불가 |
다만 재판부는 내란 방조 혐의에 대해서는 "내란죄는 여러 사람이 결합해 실행하는 필요적 공범에 해당하므로 내란 방조 혐의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이 부분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추가 혐의: 사후 선포문 작성과 헌재 위증
한덕수 전 총리는 비상계엄 해제 이후 최초 계엄 선포문의 법률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작성한 사후 선포문에 윤석열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각각 서명한 뒤 이를 폐기한 혐의로도 기소되었습니다. 재판부는 이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였습니다.
또한 한 전 총리는 2025년 2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계엄 선포문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위증한 혐의도 받았으며, 재판부는 이 역시 유죄로 판단하였습니다.
판결문에 담긴 12월 3일 그날의 기록
한덕수 전 총리의 1심 판결문에는 2024년 12월 3일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의 행적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불법 계엄이 선포된 직후인 오후 10시 42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오른손으로 누군가에게 '전화하라'는 취지의 동작을 두 번 취한 것이 적시되었습니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이상민 전 장관과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 지시 이행 방안을 논의한 사실도 인정하였습니다. 이상민 전 장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장관에게서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가 기재된 문건을 교부받았고, 그 이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조지호 전 경찰청장, 허석곤 전 소방청장,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등 관련자들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법정구속 결정과 그 의미
재판부는 선고 후 법정구속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별도 신문 절차를 진행한 뒤,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법정구속을 결정하였습니다. 이로써 한덕수 전 총리는 전직 국무총리로서는 헌정사상 최초로 법정에서 구속되는 역사적 사례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전직 총리가 정치자금법 위반 또는 뇌물 수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례는 몇 차례 있었으나, 사법부의 첫 판단인 1심부터 유죄가 선고되고 법정에서 구속된 경우는 전무하였습니다. 이번 판결은 그만큼 이례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법원이 지난 1997년 전두환 씨 이후 약 29년 만에 내란죄를 인정하였다는 점에서도 이번 판결의 역사적 의의는 매우 큽니다. 재판부가 한 전 총리에게 선고한 징역 23년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최종 선고된 형량보다도 높은 수준입니다.
한덕수 전 총리의 55년 공직 생애
한덕수 전 총리는 1949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0년 서울대학교 상대 경제학과 재학 중 제8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하였습니다. 이후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1979년)와 박사(1984년)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그는 55년간 공직에 몸담으면서 보수와 진보의 경계를 넘나들며 요직을 역임해 '처신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 휘하의 산업담당비서관, 통상산업부 차관, 특허청장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외교통상부 초대 통상교섭본부장과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하였습니다.
| 정부 | 주요 직책 |
| 김영삼 정부 | 청와대 산업담당비서관, 통상산업부 차관, 특허청장 |
| 김대중 정부 |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청와대 경제수석 |
| 노무현 정부 | 국무조정실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제38대 국무총리 |
| 이명박 정부 | 주미대사 |
| 박근혜 정부 | 한국무역협회 회장 |
| 윤석열 정부 | 제48대 국무총리 (1077일 재임, 민주화 이후 최장수) |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무조정실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거쳐 제38대 국무총리로 재직하며 참여정부의 마지막 총리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주미대사로, 박근혜 정부에서는 한국무역협회 회장으로 활동하였습니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제48대 국무총리로 재임명되어 두 번째 총리직을 수행하게 되었으며, 1077일간 총리로 재임하며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2024년 12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가 자신도 탄핵소추되는 등 정치적 격변을 겪었습니다.
한덕수 전 총리의 최후진술과 법정에서의 모습
한덕수 전 총리는 최후진술을 통해 "비록 비상계엄을 막지 못했지만, 찬성하거나 도우려 한 일은 결단코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고 했지만, 막을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국무위원들과 다 함께 대통령의 결정을 돌리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선고 당일, 한 전 총리는 변호인 4명과 함께 선고공판 시작 약 12분 전에 법정에 들어섰습니다. 굳은 얼굴로 피고인석에 앉아 변호인과 작은 목소리로 대화하며 재판이 시작되기를 기다렸습니다. 선고가 진행되는 동안 한 전 총리는 꼿꼿하게 선 자세를 유지한 채 무표정으로 재판부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진관 부장판사가 징역 23년을 선고한 순간, 한 전 총리는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였으나 다소 착잡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재판부가 "선고에 대해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한 전 총리는 작은 목소리로 "재판장님 결정을 겸허하게 받도록 하겠다"고 답하였습니다. 이후 재판부가 법정구속을 결정하자 한 전 총리는 침을 삼키고 깊은 숨을 내쉬었습니다.
여야 정치권의 반응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판결을 '모범 판결', '사필귀정'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한 전 총리의 법정구속은 당연하다. 12·3은 내란이고 친위 쿠데타"라며 "추상 같은 명쾌한 판결이고, 역사 법정에서도 현실 법정에서도 모범 판결이다. 국민 승리이며 사필귀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는 "당연한 판결이고 사필귀정"이라며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이 위헌 위법을 넘어 군경을 동원한 폭동, 즉 명백한 내란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하였습니다. 박범계 의원은 "한덕수의 법정구속과 징역 23년 선고는 아래로부터의 내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로부터의 내란이 갖는 위험성에 경종을 울렸다"고 하였습니다.
반면 국민의힘은 "1심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사법부의 최종 판단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곽규택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향후 법원 판단을 지켜본다는 입장이라 1심 단계에서 따로 입장을 밝히거나 하진 않았다"며 "어떤 근거로 내란 혐의를 인정했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당 내부에서는 "올 것이 왔다"며 착잡해하는 반응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는 "이번 판결을 우리 정치가 윤 어게인 세력, 부정선거 음모론자와 완벽히 절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향후 재판 전망: 2심 항소심과 윤석열 재판에 미치는 영향
한덕수 전 총리 측은 항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부 법조계에서는 한 전 총리의 나이(만 76세)를 감안하면 징역 23년은 사실상 종신형에 해당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으며, 2심에서는 형량이 상당히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이번 판결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판에 미칠 영향도 주목됩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등에 대해서는 2026년 2월 19일에 1심 판결이 선고될 예정입니다. 특정 재판부의 판단은 원칙적으로 해당 사건에만 적용될 뿐 다른 재판부의 판단을 법적으로 구속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상계엄 관련 일련의 사안에 대한 각 재판부 판단 기준과 근거 등을 다른 재판부에서 참고할 수밖에 없으며, 향후 법원의 판단 내용이 최종심 단계에서는 결국 수렴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번 첫 1심 선고가 윤 전 대통령 재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법원이 1997년 전두환 전 대통령 이후 약 29년 만에 내란죄를 인정하면서, 다음 달 선고 예정인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게도 내란 혐의가 유죄로 인정될 수 있다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번 한덕수 전 총리에 대한 판결은 12·3 비상계엄의 법적 성격을 '내란'으로 규정한 사법부의 첫 공식적인 판단이라는 점에서, 향후 관련 재판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마무리
2026년 1월 21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1심 판결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재판부가 12·3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전직 국무총리에게 징역 23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한 것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수호의 의지를 보여준 역사적 판결로 평가됩니다.
향후 2심 항소심과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롯한 내란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법적·역사적 평가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